즐겨찾기추가 버튼

4.16 세월호 참사

  • 센터소개
  • 4.16 세월호 참사

4.16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한 사고다.
세월호는 안산시의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주요 구성원을 이루는 탑승인원 476명을 수용한 청해진해운 소속의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으로 4월 16일 오전 8시 58분에 병풍도 북쪽 20km 인근에서 조난 신호를 보냈다.
4월 18일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였으며, 이 참사로 시신 미수습자 9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였다.

4.16 세월호 참사 테이블 - 제목, 첨부파일, 조회수, 내용 항목으로 구성
사고 일시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추정 좌표 좌표
사고 위치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
피해 현황 전체 탑승 인원 : 476명
- 사망자 : 299명
- 실종자 : 5명
- 생존자 : 172명

세월호

여객선 이미지

1994년 6월 일본 나가사키현에서 처음 건조된 여객선이다.
일본에서 ‘페리 나미노우에’라는 이름으로 2012년 10월까지 18년 동안 가고시마와 오키나와 사이의 여러 낙도들을 운항했다.
이후 한국의 청해진해운이 이 배를 중고로 도입해 6개월 정도의 수리 기간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객실 증설 공사를 진행해 총 톤수를 6825t으로 늘렸다.
또한, 승객 정원도 일본 운항 때(804명)보다 117명이 많은 921명으로 늘려, 2013년 3월부터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했다.
당시 청해진해운은 세월호와 쌍둥이선 오하나마호(6322t, 2003년 도입)를 인천-제주 항로에 번갈아 투입했다.
오하나마호가 월ㆍ수ㆍ금요일, 세월호가 화ㆍ목ㆍ토요일 오후 6시 3분 인천을 떠나 다음날 오전 8시 제주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이는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어 주로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이나 단체 관광객이 많이 이용했다.

세월호참사 발생 원인

세월호

무리한 화물 적재와 증축

세월호 출항 예정시각이었던 2014년 4월 15일 저녁 6시 30분 인천항엔 안개가 자욱해 많은 선박들이 출항을 포기했으나, 세월호만 2시간 30분 늦게 출항 했다. 또 세월호는 안전점검표에 차량 150대, 화물 657톤을 실었다고 기재했지만, 실제로 실린 화물은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으로 무리한 화물을 적재 했다. 이와 같은 과적 화물은 세월호가 급격한 변침 으로 복원력을 잃은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되기도 했다.

진도 VTS 관제 허술, 초기 대응시간 허비

세월호는 급선회로 배에 이상이 생긴 이후, 사고 수역 관할인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아닌 제주 VTS에 최초 신고를 해 초기 대응시간을 허비했다. 더욱이 세월호가 진도 VTS 관할 수역에 4월 16일 오전 7시 7분에 이미 진입해 있었음에도 진도 VTS는 세월호의 관할 해역 진입 사실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신고를 받고 사고 해역으로 출동한 해경은 여객선 안에 300명 이상의 승객이 남아있음에도 배 밖으로 탈출했거나 눈에 보이는 선체에 있는 승객들만 구조했을 뿐 세월호 내부로는 진입하지 않는 소극적 구조로 일관했다.

승객 버리고 탈출한 선원들의 무책임함

선장을 비롯한 선원 대부분은 침몰 직전까지 탑승객에게 객실에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하고, 자신들은 배 밖으로 나와 해경 경비정에 의해 제일 먼저 구조됐다. 특히 세월호가 침몰한 곳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빠르다는 위험천만한 맹골수도(孟骨水道)였지만, 이 지역의 운항을 지휘한 사람은 입사 4개월째인 3등 항해사로 드러났으며, 더욱이 이곳을 통과할 때 선장은 조타실을 비운 것으로 드러났다.

선장 역할 포기, 세월호 선장 살인죄 인정

허둥댄 정부, 초동 대처 실패

해양수산부는 사고 발생 후 즉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세우고 범 부처 총괄업무를 시작했으나, 곧 관련 업무를 안전행정부의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에 넘겼다. 하지만 중대본은 사고 현장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수차례에 걸쳐 잘못된 정보를 발표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여기에 경기도교육청도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잘못된 공지로 공분을 일으켰다. 여기에 해수부ㆍ교육부ㆍ해양경찰청 등이 별도의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면서 사고 관련 대책본부만 10여 개에 달했다. 총리실은 중구난방이 된 대책본부를 통합해 정홍원 전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수립해 관련 업무를 총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했고, 결국 해수부장관이 다시 범부처 사고대책본부의 장을 맡게 되는 등 혼란이 극에 달하면서 구조 작업은 더뎌졌다. 이처럼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직후 초동 대처부터 허둥댔던 정부의 무능과 혼선 등 허술한 재난대응시스템이 세월호 참사에서 여실히 노출되면서 정부 책임론에 대한 비난과 질타가 쏟아졌다.

뒤늦은 구조 작업 돌입

세월호가 선수를 제외하고 사실상 완전히 침몰된 시간은 오전 11시 20분 정도였는데, 세월호 실종자 수색을 위해 잠수요원이 본격적으로 투입된 것은 사고가 난 지 8시간이 지난 4월 16일 오후 5시 정도였다. 특히 사고 발생 첫날인 4월 16일은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았지만, 처음 수백 명의 구조요원이 투입되었다고 알려진 바와 달리 수중수색은 3차에 걸쳐 16명이 투입되는 데 그쳤다. 또 세월호는 사고 초기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졌지만 3분의 2 이상이 해상에 떠있는 상태를 상당 시간 유지하고 있어 이 시기 구조장비의 빠른 투입이 필요했다. 그러나 선체 부양을 위한 리프트백 투입은 4월 18일에 이뤄졌고, 야간구조작업을 위한 오징어잡이 어선은 침몰 나흘째, 잠수부들의 이동을 돕는 대형바지선은 침몰 5일째인 4월 20일에야 뒤늦게 투입됐다.

세월호 수색과 인양

제1차 청문회

세월호 특조위의 출범과 활동 종료(2015~2016)

2015년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1기 특조위)가 출범했다. 특조위는 세월호참사 직후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출범했으나, 당시 새누리당의 반대로 수사권ㆍ기소권을 부여받지 못하는 등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조위는 활동 기한 연장 요청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와 새누리당 반대 속에 2016년 6월 활동을 종료했다.

세월호 인양 및 미수습자 유해 수습(2017~2018)

세월호에 대한 수색 작업은 2014년 11월 11일 종료되면서 사망자는 295명, 미수습자는 9명으로 남았다. 유족들은 수색 중단 직후부터 세월호의 조속한 인양을 요구했으나 공식 인양 결정은 세월호 침몰 1년 만에야 확정됐다. 해양수산부는 2015년 4월 22일 세월호 선체 인양을 공식 발표하고, 같은 해 7월 인양업체로 중국의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당초 정부는 2016년 7월까지 인양을 완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 으나 인양 작업은 기술, 비용 문제 등으로 계속 지연됐다. 그러다 세월호 선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본인양 작업이 2017년 3월 22일 시작됐으며, 세월호 참사 1091일 만인 그해 4월 11일, 세월호 육상 거치 작업이 마무리됐다. 세월호의 육상 거치가 완료되면서 미수습자 9명을 찾기 위한 수습·수색 체제로의 전환 및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 작업이 진행됐다. 이후 3차례에 걸친 수습·수색 작업을 통해 이전까지 미수습자로 남았던 9명 가운데 4명의 유해를 수습했다. 여기에 2018년 5월 10일 세월호 직립 작업에 성공한 뒤에는 그해 6월 25일부터 미수습자 5명에 대한 '마지막 수색'이 진행됐다. 마지막 수색은 2018년 8월 23일 마무리될 예정이었으나, 추가 수색을 원하는 유가족 등의 요구를 받아 10월 19일까지 연장됐다. 하지만 미수습자 추가 수습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5명의 유해가 수습되지 못했다.

세월호 수색과 인양

세월호 선조위 출범 및 활동 종료(2017~2018)

2017년 3월 국회에서 여야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특별법'에 합의하면서 세월호 선조위가 출범했다. 그리고 그해 3월 세월호 인양이 시작됐으며, 선조위는 세월호 인양을 감독하는 것으로 첫 임무를 시작했다. 이후 4월 11일 세월호 육상 거치 작업이 완료되면서 미수습자 9명을 찾기 위한 수습·수색 체제로 전환됐다. 선조위의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은 조직 정비 등을 마친 2017년 7월부터 진행됐다. 이후 선조위는 2018년 8월 6일 1년 4개월 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분석한 종합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김창준 위원장, 김영모 부위원장, 김철승 위원 등 3명은 내인설을 주장했다. 내인설은 선체의 무리한 증개축, 복원성 훼손, 화물 과적, 급격한 우회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침몰했다는 주장이다. 반면 권영빈 제1소위원장, 이동권 위원, 장범선 위원 등 3명은 외력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열린 안' 의견을 냈다. 외력설은 잠수함 등 외부 충격의 영향으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주장으로, 열린 안을 제시한 위원들은 내인설 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선조위는 활동 종료에 따라 조사 결과와 추가 조사가 필요한 부분 등을 정리해 2018년 3월 출범한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2기 특조위)'에 인계했다.

※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4.16세월호참사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Google 위키백과] 4.16세월호참사